씨야와 함께했던 지난 3년의 추억 회고록 [1부]

See You Always|2009.08.16 16:13


오늘은 조금은 감상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초장부터 이런 진지한 멘트로 포스팅을 시작하는 이유는 네.. 마음이 아파서가 정답일 것 같군요. 남규리 양이 씨야로 돌아올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온 몸으로 실감하게되니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3년간 씨야와 함께했던 추억을 곱씹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는 저와 함께 제 추억으로 여행을 떠나보는게 어떨까요? 마침 주말입니다.

추억 회고록 차례

[1부]
#.1 - 추억의 시작
#.2 - 첫번째 공방
#.3 - 두번째 공방

[2부]
#.4 - 씨야는 요정
#.5 - 고사의 추억
#.6 - 그리고 지금




[1부]

#.1 - 추억의 시작

 제가 씨야 팬이 되었던 날은 2006년 8월 3일, 뜨거운 햇살을 에어컨 바람으로 힘겹게 막아내며 행복한 여름방학을 즐기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씨야를 처음 알았던 때는 2006년 2월 말에서 3월 초쯤 씨야가 데뷔했음을 알리는 뉴스기사를 통해서였고 제가 씨야를 처음 보았던 것은 2006년 4월 경 SBS 인기가요에서 구두를 부르시는 모습을 TV로 보게 되었을 때였습니다만 사실 저는 그 이전에 SG워너비가 피처링에 참여한 씨야 1집 수록곡 사랑하기 때문에에 빠져있었습니다. 덕분에 씨야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노래하나는 끝내주게 잘 부른다' 라고 씨야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요. 제게는 그저 '노래 잘부르는 여성 3인조 그룹'이었던 씨야의 열렬한 팬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2006년 8월 3일 X맨 재방송을 보다가 남규리 양에게 반하게 되었습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규리 양의 양갈래 머리는 지금 봐도 청순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규리 양에게 반해 씨야위듀와 남규리 양의 개인팬카페인 가빈세유에 가입하면서 저의 씨야 팬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2 - 첫번째 공방

 저는 뭐든지 제대로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씨야에게 제대로 빠져버렸고 그 것은 2006년 9월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9년 9월, 저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2006 제 3회 아시아송페스티벌이 광주에서 열렸을 때였고 바로 그 무대에 씨야가 신인가수로 출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친구 두 명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아시아송페스티벌에 가게 되었는데, 표를 획득하기 위해 PC방에서 컴퓨터 3대를 이용해 광클신공(?)을 펼쳐 어렵지 않게 표 3장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정받은 자리는 경기장 내에 있는 좌석이 아닌, 관중석에 있는 좌석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친구들과 함께 제 좌석에서 뛰쳐나와 경기장 한 바퀴를 돌아 경기장석 입구까지 갔습니다만, 충격적이게도 표가 필요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지만 솔직히 어린 마음에 너무 화가나서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열정적으로 제 분노를 표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던 제 바로 뒤의 아저씨께서 불쌍해보였는지 표 한 장을 주시더군요. 저는 표를 감사히 받아 냉큼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뿔싸.. 저의 친구들은 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저는 황급히 경기장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글쎄, 입구를 지키시던 경비원 분께서 못나가게 막더군요. (-_-;) 졸지에 배신자가 된 저는 아직도 그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만 저의 착한 친구들은 그런 저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들에게 고맙습니다.  

그렇게 배신자와 또라이(?) 까지 되어가며 만신창이가 되어 무대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씨야를 보았던 그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여신포스 씨야를 그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지금도 너무 행복합니다. 


 #.3 - 두번째 공방

 아시아송페스티벌이 끝난지 6일 정도 되었을 때, 너무나 영광스럽게도 여신포스 씨야를 또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광주여자대학교 축제에 씨야가 출연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저는 아송페 원정대 맴버 중 한 명을 꼬드겨 광주여대 축제에 끌고 갔습니다. 지금도 너무 미안한 점은 왕복 택시비 2만원을 그 친구가 모두 부담했다는 것입니다만... (-_-;) 뭐 그 친구 덕에 늦을 뻔 했으니 별로 미안하지는 않습니다.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하지만 이번 축제의 가장 큰 추억은 씨야를 직접 보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시간을 딱 맞춰 도착했기 때문에 씨야를 등 뒤에서 봐야했던 가슴아픈 추억도 있습니다만, 저는 씨야를 가까이서 보고 씨야의 노래를 가까이서 들었다는 사실로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어린 마음에 씨야의 차량 바로 앞에서 노홍철의 저질댄스에 버금가는 민망한 모션을 취했던... (19금은 절대 아닙니다..)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입니다. 과연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주변에 있던 팬들까지 그런 저의 모습에 민망함에 치를 떨며 저를 또XX라고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아, 차에 타고 계셨던 씨야 분들은 뭐라고 하셨을까요. 다행히도 그 때가 12시에 가까운 늦은 밤이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을 뿐입니다.    (ㅜ_ㅜ)


그래도 행복합니다.
씨야의 남규리, 김연지, 이보람
씨야의 남규리, 김연지, 이보람이라는 선물과
씨야의 남규리, 김연지, 이보람과의 추억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선물들을 평생 간직할겁니다.
영원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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